포털 검색 후 20분만에 총책됐다…'꾼' 모으는 불법도박 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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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명(아이디), 비밀번호, 닉네임, 이름, 연락처, 은행 정보, 환전 비번. 양식에 맞게 작성해 주세요.”
지난 23일 ‘메이저 놀이터’ ‘먹튀 검증’ 등의 문구를 내건 A 불법 도박 사이트에 있는 텔레그램 아이디로 말을 건네자, 얼마 안 돼 이렇게 답장이 왔다. 도박 사이트 운영 및 홍보 담당자 모집을 위한 아이디였다.
네이버와 구글 등 유명 포털사이트에서 A 사이트를 검색하면 사이트 소개와 연결 링크가 상단에 노출된다. 누구나 쉽게 접속할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이곳에선 간단한 정보 몇 개만 전달하면 불법 도박 참가자 모집 ‘총책’(총책임자)이 될 수 있었다. 답장을 보낸 사람은 자신을 ‘총괄 00팀장’이라고 소개했고, 아이디 등 정보를 보내지 않자 잠시 뒤 “B 사이트를 통해 입력해도 된다. 정보 입력이 완료되면 요율 설정(모집 자금에 대한 수수료 책정)을 해드리겠다”며 적극적으로 ‘총책’이 되는 법을 추가로 안내했다. 특별한 절차도, 만남도 필요 없었다. 간단한 정보 몇 가지만 준비하면 메시지 몇 통으로 가능했고, 총책이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20분 정도면 충분했다.
같은 사이트 게시판에선 ‘에이전시 00프로’라는 모집자가 도박 사이트 총책 모집 글을 올려놓고, 수수료 상세히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총판 스타트 커미션으로 카지노 1.1%, 슬롯 3.8%를 지급하겠다”며 “대형 총판일 경우 월초 페이백 5% 프로를 추가 지급한다”고 적었다.
해당 사이트의 누적 방문자 수는 이날 기준 약 1억9515만명에 달했다. 가장 오래된 게시글은 2016년에 작성된 글로, 최소 7년 이상 유지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 마포경찰서가 지난달 검찰에 송치한 도박 사이트 총책 전모(27)씨와 일당 9명이 실제로는 만난 적도 없는 도박장 운영진과 함께 범행을 모의한 곳도 이 사이트였다. 전씨 등이 실제 도박 장면을 유튜브로 생중계하며 모은 판돈은 450억원에 달했다. 도박장 운영자가 A 사이트를 통해 모집 총책들을 모으고, 이들은 홍보를 통해 사람들을 도박판에 끌어들인 뒤 판돈에 비례해 일정한 수수료를 가져가는 것이다.
‘모집 총책’ 검거됐지만, 사이트 버젓이 운영
현재도 사이트를 통해 총책 등 일부만 검거됐을 뿐, 운영자들은 여전히 A 사이트를 통해 ‘도박 일꾼’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이곳을 통해 접속할 수 있는 각종 채팅방과 커뮤니티 등에선 ‘카지노ㆍ슬롯 총책/파트너 모집’ ‘부본(부본사), 총판, 파트너 정중히 모십니다’와 같은 불법 도박 홍보 담당자 구인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A 사이트는 또 참가자들에게 불법 도박 사이트 추천해 주거나, 정보 공유를 돕는 역할도 한다. 사이트 이용자들은 ‘먹튀방’을 통해 도박 자금을 받고 사이트를 폐쇄하거나 잠적한 블랙리스트 주소를 공유했고, 빈 공간마다 “A 사이트 공식 인증업체”, “사고 발생 시 전액 보장” 등의 광고가 도배돼있다.
불법 도박장 운영진과 모집 총책, 그리고 참가자들까지 이어주고 도박장으로 안내하는 ‘불법 도박의 전초기지’나 다름없는 것이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변호사는 “불법 도박은 운영자와 프로그래머, 모집 총책 등으로 역할이 세분화된다. 세분화된 조직원들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필요하다”며 “A 사이트가 이런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A 사이트에서 불법 도박이 이뤄지지는 않지만, 불법 도박 참가자를 모을 모집 총책을 구인하거나 도박 사이트를 추천하는 것만으로도 수사와 처벌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김한규 법무법인 공간 변호사는 “운영자와 총책을 중계하는 자도 공범으로 볼 수 있고, 수사할 수 있다”고 했고, 경찰 역시 A 사이트 운영진에 대해 도박 공간 개설 혐의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접속 차단에 최소 2주…해외에 거점 둬 수사 한계
다만 수사를 통해 운영진을 검거하고 사이트를 차단하기까지는 걸림돌이 많다. 전모씨 일당 수사 과정에서 A 사이트의 불법 행위를 인지한 경찰은 최근 방송통신위원회에 A 사이트 접속 차단도 요청했다. 그러나 방통위 심의까지는 최소 2주가 걸리며, A 사이트의 경우 우회 주소도 여러 개 있어 차단하더라도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비슷한 사이트들 대부분 해외 IP 주소를 사용하고, 텔레그램 등을 활용해 범죄를 공모하기 때문에 증거 확보와 운영진 추적도 어렵다. 마포서 관계자는 “전모씨 일당 사건처럼 대형 도박 사이트에서 파생된 수사가 한둘이 아니다”라며 “수사를 완결성 있게 하기 어려운 한계점들이 분명히 있지만, 누구나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신속하게 수사를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온라인 불법 도박 사이트 적발 건수는 갈수록 증가세다. 2019년 1만6476건에서 2021년 1만8942건으로 15% 늘었다. 이 때문에 도박 자체에 대한 예방 교육이나 중독 치료 못지않게, A 사이트와 같은 도박 중개나 총책 모집 사이트를 단속하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관계자는 “A 사이트와 같은 사이트만 확실하게 차단하고 단속해도 불법 도박 근절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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